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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영화 리뷰

[조커] 1. 배려없고 무례한 세상

by 똘똘한 똘이장군 2022. 9. 8.

수많은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인기 많고 가장 매력적인 빌런은 아마도 조커일 것입니다.

히어로가 나오는 작품이 명작의 반열에 오르게 위해서는 반드시 매력적인 빌런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인기 있고 멋있는 히어로가 좋은 활약을 펼친다 해도 빌런의 매력이 부족하다면
 
작품은 시시하고 재미없어질 겁니다.

히어로를 위기에 몰아넣고 그걸 극복할 기회를 주면서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부각하는 것

어떤 의미에서 빌런 즉, 악역은 주인공만큼 중요한 것이죠.


조커가 여타 다른 빌런들과는 다르고 빌런의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로 떠오르는 것은

조커의 치명적인 매력과 상징성 때문일 겁니다.

조커는 그저 평범한 악당이 아닌 분노, 광기, 조롱, 집착을 제대로 보여주며

일반적인 상식을 무시하는 예측할 수 없는 무질서의 혼란이

바로 조커의 카리스마이자 매력입니다.

그래서인지 헐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조커는 모두 엄청난 배우들이 캐스팅되었습니다.

잭 니콜슨과 히스레저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잭 니콜슨은 코믹스에 조커를 그대로 현실로 가져와 살아 움직이게 만들었고

히스레저는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마피아들의 우두머리이자

범죄자들의 사상적 리더라는 공포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아서 플렉"이라는 조커의 광기는 분노와 증오가 이끌어낸 광기였습니다.



이 조커는 역대 어떤 조커보다도 슬프고 비참하고 어두웠습니다.

때문에 과연 이렇게 진지하게 우울한 작품이 대중적으로 흥행할 수 있을 것인가 하고

이 영화에 의문을 표하는 전문가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현실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며 무척 선동적이었고 

폭력성에 대한 경고를 널리 퍼뜨렸습니다.

조커가 저지르는 폭력은 과격하며 잔인하고 대단히 현실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커 영화가 나오고 나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날까 싶어 시민들에게 공포심이 번졌고

미국 군대가 경계령을 세울 정도였으니까요.

조커 개봉 후 미국의 거리

영화를 본 사람들은 미국에서 그럴만하다 생각할 겁니다.

한편으로는 지금의 미국이 이런 영화의 영향을 두려워해야 할 정도로

사회적 갈등이 퍼져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려는 없고 무례 하기만 한 세상. 아서 플렉이 본 세상은 그랬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왜 아서 플렉은 세상을 무례한 것으로 바라봤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영화 조커는 한 광대 미쳐버린 내면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일으킨 세상의 혼란한 환경을 배치하였습니다.

우리 사회는 평화로운 시위를 하겠다는 뜻으로 촛불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는 시위 현장에 화염병과 최루탄 같은 무기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저항의 수단이 무엇인가는 아주 중요합니다. 


어느날 10대 청소년들에게 강도를 당한 아서 플렉은 동료로부터 권총을 얻게 됩니다.

영화에서는 그 권총이 저항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권총은 자신이든 누구든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수단입니다.

우연히 발사된 총알이 방 안에서 굉음을 냈을 때 아서 플렉은 권총을 실감합니다.

그리고 그를 비웃는 세명의 남자들에게 그 권총을 사용하게 됩니다.

강도를 당했을 때 알게 된 폭력의 아픔, 세상으로부터 받는 멸시와 조롱, 

안 그래도 비참한 인생이었던 아서 플렉을 조롱하고 공격하려 할 때

마침내 꺼내든 권총으로 세 명의 남자를 살해합니다.


권총으로 남자를 살해한 건 조커로 변하는 아서 플렉이 내리는 심판과도 같았습니다. 

때문에 아무런 죄책감도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남자를 죽인 그 행동으로 인해 세상이 자신에게 겁먹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은 3명의 죽음에 큰 관심을 보였고 살해 당시 했던 광대 분장은 하나의 상징이 됩니다. 

그토록 받고 싶었던 관심을 이렇게 처음 받게 되었습니다. 

살해당한 세명의 남자들이 백인이고 또 가진 자에게 때문에 세상이 관심을 가지며

죽음을 조명받지 못하고 그보다 비참하게 죽어가는 이들은 이곳 고담이라는 도시에 얼마든지 있다고 

아서 플렉은 생각합니다.


이제 영화는 분명하게 두 가지를 구분합니다.

광대 살인을 지지하는 부류는 가지지 못한 자, 정의를 요구하는 것은 가진 자라고

그리고 토머스 웨인이 등장합니다.

그는 가진 자, 기득권을 대표하는 인물이고

그런 토머스에게 아서 플렉의 살인은 처단해야 할 악입니다.

아서 플렉의 어머니 페니플렉은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여자였고

과거 토머스 웨인과 사랑했다는 착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서 플렉은 어머니의 말을 듣고 아버지의 존재를 인지하며 한 줄기 빛을 보게 됩니다.

즉 자신이 이토록 비참하게 살게 된 이유와 그동안 받았던 모든 괴로움에 대한

분노와 절망을 쏟아내는 동시에 이제 이 비루한 삶의 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토머스 웨인을 찾아가 그곳에서도 비참하게 매달리듯 자신이 당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지만

따뜻하게 자신을 안아줄 줄 알았던 생각과는 달리 아버지라 생각했던 토머스웨인에게 들은 건 

차가운 비웃음과 돈이 필요하냐는 대답, 그리고 아픈 폭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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